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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육아, 따뜻했던 마음만은 기억하길
> 오피니언    |   2020년06월24일
윤진아 (yun_jina@leadmom.com) 기자 
[글 = 김은애]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빠(아이의 할아버지)가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시는 모습을 볼 때, 아이의 재롱에 푹 빠져 웃으시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렇다.   

내가 어릴 땐 아빠 얼굴에 알록달록 화장을 해주고 아빠 눈 가리고 잡기 놀이하고 시험 하루 전날 엄마 몰래 아빠와 둘이서만 놀이동산에 갔다가 나중에 들켜서 엄마에게 혼났던 일들이 떠오른다. 모두 기억 깊은 곳,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다가 순간순간 그런 기억들이 하나씩 살아나곤 한다. 아빠가 나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모습을 볼 때 말이다.  


그땐 몰랐는데 확실히 아이를 키우고 나니 그동안 무관심했던 아빠의 감정이 이해되고 공감된다.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땐 일을 하시느라 온전히 나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마음에 퇴근길엔 내가 좋아하는 인형의 옷을 한 벌씩 사다 주셨다. 엄마는 장난감을 그만 사 오라고 하셨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아시고 그 마음을 채워주는 건 아빠셨다.   


내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아빠는 꼭 결혼할 때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있으시다며 열심히 축가도 연습하셨다. 결혼식 당일엔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눈물로 채워져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나중에 식탁에 앉아 내 앞에서 불러 주셨다. 아직도 우연히 그 노래를 듣게 되면 울컥한다. 노래에 마음을 담은 아빠의 언어가 이제야 하나씩 이해가 된다.   


아빠는 내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가장 먼저 아이의 안부가 아닌 내 안부를 물으셨다. 손주보다 딸의 건강이 우선이셨다.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간 지 이틀 만에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에 전화로 “많이 아팠지?”라며 눈물까지 보이신 아빠셨다. 그 이후로도 손주의 옷을 사러 가면 늘 딸 것도 하나씩 사 오시곤 했다.    




아빠의 그런 사랑을 당연하게만 느꼈었는데 내가 엄마가 된 후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야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일을 할 때 아빠는 종종 아이를 도맡아 봐주신다. 할아버지의 육아는 할머니의 육아와는 사뭇 다르다. 할머니는 먹는 것, 자는 것 모두 제때제때 신경 써서 챙기느라 바쁘시지만 할아버지는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주의다. 그래서 아이들 낮잠도 밖에서 자주 재우신다. 나무 아래나 햇볕이 은은하게 드는 공원 의자에 앉아 무릎에 아이를 눕히고 재우시는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 낮잠 사진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밖에서 자다 보면 감기 걸리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실제 아이의 감기로 이어져 아빠를 탓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또한 할아버지의 육아 방식이고, 아이들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아이가 낮잠을 자지 않아 사투를 버리고 있을 무렵 아빠가 등장하셨다. “안아 재우면 팔 아파~”하시더니 아이를 푹신한 의자에 올려놓고 천천히 트로트를 부르시면서 거실을 왔다 갔다 하셨다. 그렇게 해도 아이가 낮잠을 잘까 반신반의했는데 어느새 아이는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그때부터 아빠의, 아니 할아버지의 육아 방식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다.   


육아에 정석은 없다. 엄마(아이의 할머니)는 먹는 것도 밥과 국, 반찬에 제대로 갖춰서 식판에 놓고 먹이신다. 아이가 먹지 않으면 유튜브를 켜고 한 시간이 넘더라도 다 먹이시고야 만다. 하지만 아빠(아이의 할아버지)는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양껏 먹게 하신다.   


어느 날, 저녁 시간에 아이를 아빠에게 맡겼던 적이 있었다. 사실 먹을거리가 걱정돼서 반찬을 다 준비해놨지만 계획은 역시나 어긋났다. 아빠는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두세 시간을 보내신 뒤 두 돌도 안 된 둘째가 “와플 가자~ 와플 와플!”했다는 이유로 와플과 주스, 아이스크림을 먹이고 귀가하셨다. 밥 먹기 전에 간식을 많이 먹은 탓에 결국 아이들은 저녁을 먹지 않았다. 와플로 저녁을 해결했다는 사실에 처음엔 다소 놀랐지만 아이들과 할아버지의 사이는 더 돈독해진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입 주변의 초콜릿을 닦으러 “재밌었어!!”하며 까르르 웃었다.   


아이들은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랑 갔던 와플 가게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편의점에서의 추억을. 할머니는 물론 엄마는 웬만해서 사주지 않은 것들을 할아버지와는 마음껏 할 수 있으니 “할아버지는 언제 오셔?”라고 자주 묻는 이유가 다 있다.   


꼭 밥, 국, 반찬으로 챙겨 먹지 않아도 되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함께 노는 것’이라는 아빠. 그래서 아이들과 신나게 몸으로 놀아주신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그랬다. 아빠는 수건으로 본인의 눈을 가리고 언니와 나는 손뼉을 쳐서 이곳저곳 숨고 잡기 놀이를 했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한참 웃고 뛰고... 그래서 아빠는 무서운 사람이기보다 감사하게도 편한 존재였다. 안 되는 것들을 몰래몰래 허락해 주시던 편이었고, 그 사랑은 손주에게도 변함없으시다. 아이들과 잡기 놀이, 역할 놀이를 하면서 놀아주신다. 아이들은 어느새 땀 뻘뻘 흘리고 배꼽 잡고 웃느라 바쁘다.   


예전엔 ‘아이들이 한 살 한 살 크면 어떨까?’ 때론 ‘어서 컸으면 좋겠다고’생각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 엄마가 나이 드시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이만 생각하고 아이만 보였다면 이젠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의 모습이 더 보인다.  


며칠 전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않으시던 아빠가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애들이 크면 할아버지를 기억할까?”   


“그럼! 기억하지”   



잠깐 적막이 흘렀다. 아빠는   


“아련하게 기억나겠지?”  


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 후 아빠와 나는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아빠와의 추억을 아련하지만 참 따뜻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흐릿하긴 해도 기억할 것이라 믿는다.   



얼마 전. 아빠가 아이들을 봐주러 오시기로 했는데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 넘도록 연락이 되질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린 후에 집에 도착하신 아빠를 보며 나는 “아빠! 연락을 미리 해주시지~. 계속 기다렸는데 연락도 안 받으시고!”라며 쏘아붙이듯이 얘기했다. 며칠 뒤 엄마를 통해 알았는데, 아빠는 한 달 전 갑자기 복통으로 병원에 가셨고 그 후로 계속 병원 검진을 다니고 계셨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한 말과 행동들을 돌이켜보며 반성했다.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구나..’  


나는 양가 모두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이 전혀 없다. 

나의 아이들은 이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들을 기억하겠지? 설령 기억이 사라지더라도 그 기억의 온도만큼은 따뜻하게 남았으면 좋겠다.   


아빠!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같이 살아요. 사랑합니다.





글 = 김은애
4살, 2살 아이를 키우며 심리치료대학원에서 놀이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3년 가까이 육아 관련 네이버 포스트(post.naver.com/goanna11)를 운영하며 육아 정보나 육아 관련 글들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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